영화 오펜하이머 흥미진진한 줄거리와 신들린 연기 평점
"프로메테우스는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고, 그 형벌로 그는 바위에 묶여 영원히 고통받았다."
슬로모션으로 핵폭발 장면과 함께 위 문구가 뜨며 영화가 시작됩니다.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 영화로, 줄리어스 오펜하이머가 미국 핵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해 원자폭탄을 개발한 역사에 대한 전기영화입니다. 오펜하이머의 불안했던 초년의 사생활과 정신세계, 핵폭탄 개발의 영광과 대량살상무기의 아버지로서의 죄책감, 매카시즘의 피해를 경험하며 불행한 초년과 말년, 그리고 영광의 중년 삶을 3시간 동안 오펜하이머에서 간접체험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8월 15일에 개봉이 되었으나 미국에서는 7월에 개봉되었으며, 개봉일 imdb 평점이 9.0점을 기록하며 top 250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이 순위권 안에 진입한 8번째 놀란 감독의 영화이며, 이로써 놀란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을 제치고 250위 안에 역대 가장 많은 작품을 올린 감독이 되었습니다.
흥미진진 영화 줄거리
이 영화는 하나의 시간대가 아닌 오펜하이머의 젊은 시절~ 맨해튼 계획으로 이어지는 시간대, 1954년에 원자력 협회에서 벌어졌던 오펜하이머 청문회, 그리고 1959년에 있었던 루이스 스트로스의 청문회 세 개의 시간대에서 진행이 됩니다. 컬러 Fission(핵분열)과 흑백 'Fusion(핵융합)' 파트로 나누어 진행되어 핵분열은 원자폭탄의 원리로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계획을 통해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된 이야기를 반영하며, 핵융합은 수소폭탄의 원리로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의 개발을 반대했다가 스트로스와 매카시즘의 희생양이 되어 몰락하는 과정을 반영하는 제목이기도 합니다.
오펜하이머의 젊은 시절~ 맨해튼 계획 (컬러로 연출)
케임브리지 대학교 유학시절 실험물리학에 서툴러서 고생하던 젊은 오펜하이머가 지도교수 패트릭 블래킷을 독살하려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다행히도 닐스 보어 교수의 권유로 독일 괴팅겐 대학교로 학적을 옮기면서 오펜하이머는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을 접하고,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UC 버클리와 미국의 칼텍으로 돌아온 오펜하이머는 실험물리학자인 어니스트 로런스와 협업을 합니다. 공산주의자인 진 태틀록과 연인 관계가 되지만, 결혼은 또 다른 공산주의자인 캐서린과 합니다. 오펜하이머는 미국 공산당에 가입하진 않은 채 공산당과 교류를 합니다. 오펜하이머에게는 많은 친구들과 지지해 주는 동료 물리학자들이 있었지만,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 박사가 거의 유일한 친구입니다. 물론 라비 박사는 실제로도 오펜하이머의 매우 가까운 친구였으며, 독일 괴팅겐 대학교 유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막역지우 사이입니다. 유대인 출신이지만, 무신론자이며, 오펜하이머 역시도 유대인 혈통 출신에다가 초기 해외 유학시절을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싹트게 된 계기가 됩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미군 장군인 레슬리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를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로 임명하게 됩니다. 오펜하이머와 그로브스는 뉴멕시코주 로스 앨러모스에 연구소를 짓고 2년의 시간 동안 원자탄 연구에 집중합니다. 원자탄이 완성되기 전 독일이 항복하게 되지만 맨해튼 계획은 계속되어 포츠담 선언 직전에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됩니다. 이 장면이 오펜하이머 인생의 정점이 됩니다. 그러나, 트리니티 실험 이후 원자탄에 대한 모든 결정은 오펜하이머의 손을 떠나게 되고, 그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이 투하된 사실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알게 됩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된 오펜하이머는 원자탄에 대한 실권을 빼앗기게 됩니다.
1954년 오펜하이머 청문회 (빛바랜 색감으로 연출)
이 시점에서 오펜하이머는 핵 확산 방지를 위해서 수소폭탄 개발을 하지 말 것을 주장하게 되는데, 이로인해 맨해튼 계획에서 함께 연구했던 에드워드 텔러와 갈라서게 됩니다. 오펜하이머의 이러한 변화는 미국 공산당과 교류했던 그의 과거와 맞물려서 정부의 의심을 사게 됩니다. 이 와중에 원자력 위원회의 루이스 스트로스라는 과거 몇몇 일로 오펜하이머에게 앙심을 품고 앞서 말한 정부의 의심을 이용해서 오펜하이머에게 공산주의자이자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워서 원자력 관련한 분야에서 숙청해 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에드워드 텔러는 오펜하이머에 대해 안 좋은 증언을 하며 배신을 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그간 같이 일해왔던 사람들이 두 편으로 갈라지게 되는데, 끝까지 오펜하이머를 도와주고자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매카시즘 시대에 대한 무서움으로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됩니다.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에 앙심을 품게 된 이유가 두 가지 나오는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관련한 오해는 영화적인 창작이라고 합니다. 다른 하나의 이유인 된 동위원소 논쟁은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진 일화인데, 이 논쟁에서 오펜하이머가 스트로스와 대립했던 것은 사실이며, 후에 소련의 핵실험이 시작되자 놀랍게도 과학자도 아닌 스트로스의 주장대로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과학적으로 엄밀하지 않았던 의견이 나중에 실용적인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는,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스트로스 입장에서는 오펜하이머를 의심하고 미워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유입니다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의 청문회 (흑백으로 연출)
약 5년 후 스트로스는 상무부 장관임명 청문회에 있습니다. 보좌관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스트로스에게 통과 의례일 뿐이라며 위로하고, 청문회도 순탄하게 흘러갑니다. 그러던 중 증인 명단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익명의 과학자가 증인으로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스트로스는 다시 한번 불안해하기 시작합니다. 과거 자신이 오펜하이머를 개인적인 원한으로 누명 씌운 것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이유였는데, 보좌관도 오펜하이머 사건의 진실을 접하자 상당한 실망감을 보입니다. 증인으로 선 과학자는 데이비드 힐이었고 그는 과학자들을 대표해 스트로스에게 품은 반감을 표하였고, 그 당시 오펜하이머를 향한 공격이 스트로스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것이었음을 고발하게 됩니다. 이 증언으로 청문회에서 공개적인 모멸을 당한 스트로스는 대기실로 돌아와 오펜하이머는 이기적인 인물이었다며 분노를 터뜨립니다. 결국 그는 상원 인준 표결에서 장관임명에 패하게 됩니다. 스트로스는 보좌관에게 과거 자신이 목격했던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만남을 언급하는데, 그날 이후 아인슈타인이 자신을 무시했다며 오펜하이머가 과학자 모두를 하나둘씩 자신에게서 이간질시켰다며 불쾌해합니다. 그런 스트로스에게 보좌관은 "어쩌면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당신보다 중요한 일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라고 회답합니다. 영화 후반부인 1963년 12월, 오펜하이머는 린든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엔리코 페르미 상을 받게 됩니다. 비록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잃은 후였으나, 오펜하이머의 명예는 일정 부분 회복되고, 에드워드 텔러와도 화해합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3차례의 장면은 놀런감독의 장기인 임팩트 있는 인서트와 전환, 그리고 함축적인 대사가 총동원된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신들린 연기
주인공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킬리안 머피의 신들린 연기에 대한 평가가 엄청납니다. 놀런 감독의 각본이 처음으로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지는 영화라는 점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킬리안 머피에게 더욱 부담을 주었겠지만, 아주 멋들어지게 열연을 펼칩니다. 미국 연예 대중 매체, 영화 매체들은 따놓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라는 일찌감치 호평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 중 실제 인물과 가장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 역의 맷 데이먼의 연기도 크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그로브스가 청문회에 불려 나왔을 때 그는 퇴역한 상태로 스트로스가 뒤에서 FBI를 움직여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유도하고, 일 뜻대로 하지 않으면 맨해튼 계획 당시 스파이 음모 계획에 대한 재조사로 증인소환 및 당시 책임자로서 처벌할 수도 있다고 협박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그로브스 장군은 청문회에서 "만약 지금 오펜하이머에게 보안 취급 인가를 내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오늘날의 규정 하에서는 인가를 내줄 수 없다"라며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그로브스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브스는 진술 후, "오늘날 규정하에서는 나는 오펜하이머가 아닌 다른 그 어떤 이가 와도 이 규정에 의해 보안 허가를 내줄 수 없다"라며 완곡하게 스트로스 및 원자력 위원회를 비판하는 대사를 추가하였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여러 주조연급 배역들의 멋진 연기들이 가득했는데, 수많은 명배우들이 누구 하나도 튀지 않으며 다 같이 극을 이끌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짧은 신이지만 게리 올드만은 해리 트루먼역을 아주 멋지게 연기했으며, 여기에 오스카 상을 거머쥔 라미 말렉이나 케이시 애플렉의 캐릭터들이 절제되면서도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장면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평점
IMDb 8.6/10 (Top 250 중 32위)
'오펜하이머'는 킬리언 머피의 연기와 탁월한 시각효과들을 통해 크리스토퍼 놀런이 또 한 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성취를 이루어냈음을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 - 로튼 토마토 평론가 총평
지성, 야심, 윤리 그리고 잔해 박평식 평론가 (★★★★)
후폭풍 같은 그림자와 강렬한 빛으로 구성된 오펜 하이머의 시간 - 오진우 (★★★★☆)
작정하고 벼르고 만든 영화 작가의 펜촉, 비범한 잉크, 휘황한 필치 - 이우빈 (★★★★☆)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
핵폭발 장면 자체의 연출이 매우 훌륭합니다. 약 2년 11개월과 20억달러, 몇 년에 걸쳐 모은 매우 소중한 우라늄과 플루토늄, 세계 최고의 물리학 천재들을 포함한 약 13만 명의 프로젝트의 성패가 한순간에 달렸다는 긴장감과 부담감을 매우 몰입감 있게 잘 표현하였습니다. 조용한 와중의 순수한 하얀색의 화구, 그리고 버섯구름과 충격파까지 잘 재현이 되었다는 평가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영화를 제작할 때 CG사용을 자제하고 실제 촬영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마침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이다 보니, 이번에는 진짜 핵무기를 터뜨려서 찍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돌기도 했으나 영화 촬영을 위해 진짜 핵실험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재래식 폭약으로 비슷한 폭발 효과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영화 제목이 '맨해튼 계획'이 아닌 '오펜하이머'에서 불안했던 초년의 정신세계와 사생활, 핵폭탄 개발의 영광, 대량살상무기의 아버지로서의 죄책감, 매카시즘의 피해를 차례로 경험하며 초년과 말년이 불행하고, 중년은 엄청난 영광이었던 삶을 3시간 동안 몰입감 있게 간접체험을 수 있을 것입니다.